유럽 백인들이 타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많은 학자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꼽는다. 그리고 이 요인들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조건이 바로 식량 생산이었다. 식량 생산은 무엇보다 중요한 군사적 이점인 인구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수렵 채집민은 먹거리를 찾아 유랑 생활을 한다. 무리의 기동성은 중요해지고, 소지품을 간소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수렵 채집민은 단 한 명의 아이만 안고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걸음이빨라질 때까지는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실제로 수렵 채집민들은 금욕, 유아 살해, 낙태 등을 통해 4년정도의 터울을 유지하는데 비해 농경 민족의 산아 간격은 2년으로, 인구 밀도의 차이는 크게 발생한다.
농경-정착 생활의 또 다른 이점은 잉여 식량을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음식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렵 채집민과의 결정적인 차이인데, 잉여 식량이 있다는 건 모두가 농업에 힘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분야에 힘을 쓸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칼이나 총기 등을 만드는 금속 기술을 비롯해 인류를 더욱 강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각종 기술들은 풍족한 식량을 바탕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정착 생활의 이점은 가축을 기르는 것에도 있었다. 가축은 농사를 도와주거나 풍족한 먹거리가 되어주기도하지만 놀랍게도 가축은 유럽인들이 정복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살던 수많은 원주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병원균이 사실은 동물의 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원래 동물의 병원균이 인간으로 옮겨온 것인데, 가축을 키웠던 유럽인은 수 년을 거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끝에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다. 질병에 면역력을 가진유럽인은 대륙을 건너 도착했는데, 유럽인에게 있던 병원균이 면역력이 없는 원주민들에게 옮겨 붙어 치명적인 유행병을 만들어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풍족한 식량과 많은 인구, 기술 발전을 유도하고 정복전쟁에 결정적인 병원균까지 확보하는 일이었으며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의 민족보다 더 빨리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를 이루면서 우위에 있는 기술과 힘으로 다른 대륙을 침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럽 백인들이 원시 생활에서 벗어나 가장 먼저 앞서 나갈 수 있었을까? 그들이 다른 대륙의 민족보다 우수했기 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대량으로 키울 수 있는 식물과 동물의 종류가 극소수에 불과한데, 유라시아 지역, 특히 지중해 옆 초승달 지대가 너무나도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의 경우 20만 종의 식물 중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수천 종 뿐이고 그중에서도 작물화에 성공한 건수백 종에 지나지 않으며 현대에도 전세계 농작물 총생산량의 80%는 단 12종의 생물이 책임지고 있을 정도로 작물화가 가능한 식물의 조건은 까다롭다. 동물의 경우에도 수많은 종 중에서 고대 인류가 기를 수 있었던소, 돼지, 말 같은 대형 포유류는 14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초승달 지대에는 14종의 동물 중 무려 13종이 살고 있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56종의 볏과 식물 중 32종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초승달 지대는 인류가기를 수 있는 극소수의 동식물이 사는 축복받은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에는 많은 요인이 있지만 한 가지만 꼽자면 짧은 거리 안에 지형 변동 특히 고도의 변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이 곳에는 지구에서 가장 낮은 지점(사해)부터 해발 5600m에 달하는 산맥(엘부르즈 산맥)이 있었고 고도에 따라 기온차가 심해 동식물의종이 풍부했다. 고대 사람들은 무엇이 키우기에 적합한 동식물인지 몰라 모든 종을 하나씩 실험했을 것이고인류에게 적합한 종이 없는 지역도 많았을 것이다. 그에 비해 초승달 지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풍복하게 야생동식물을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고 실험에 성공한 초승달 지대 사람들의 지식이 가까운 유럽으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초승달 지내는 아프리카 지역으로도 연결되어 있는데, 아프리카는 왜 농업을 빨리 시작하지 못했을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모양을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유라시아는 동-서로,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늘어져 있다. 즉, 아프리카는 위도의 차이가 지역별로 심하다. 낮의 길이, 계절의 변화, 생태계의 환경은 위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초승달 지대에서 발견된 인간이 기르기 적합한 동식물은 위도가 비슷한 유라시아로 쉽게 퍼져 나갔지만 아프리카로는 전달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프리카 뿐만이 아니다. 아메리카 또한 세로로 늘어진 지형 탓에 식량 생산 기술이 빠르게 퍼지기 어려웠고 그만큼 발전 속도가느릴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고대에 식량 생산이 전파된 속도는 유라시아가 1년에 평균 1.1km에서 5.2km였던 반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0.3km, 0.5km에 불과했다.
이처럼 동물의 가축화, 식물의 작물화로 시작된 차이는 유럽의 식민지 확장이 막 시작되던 1500년, 유럽과각기 다른 대륙들은 과학 기술과 정치 조직에서 이미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유럽의 정복전쟁은 성공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단의 원주민들은 땅을 모조리 빼앗기고 심지어 몰상당하기까지했다. 현재 세계는 이 영향으로 유라시아에서 발원한 여러 민족, 특히 유럽과 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북아메리카로 이주한 민족이 부와 힘을 독점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프리카 인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은 비록 유럽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부와 힘에서 훨씬 뒤쳐져 있는 상태다.
총, 균, 쇠
인류의 운명을 가른 건 민족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자연이 제공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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