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 중에 피렌체 일정에서
저녁식사하러 방문한 일식당.
건물 전체가 식당이라 엄청 큰 규모다.
테라스도 있고 우리는 단체 손님이라 2층으로 올라갔다.
외진 곳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진 않으니
자유여행 일정에는 추천하지 않지만,
혹시 패키지여행을 예약하고
피렌체에서 어느 식당을 가게 될지 궁금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후기를 써봅니다.
이곳은 일식집이지만 특이하게도 사장님이 중국인이셨다.
사실 특이할 것도 아닌게
일식이 유럽에서 아시안 음식으로 유명하다 보니
중국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꽤 많이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일식집에 갔는데 너무 맛있다면,
십중팔구는 사장님이 한국인인 경우가 있다.
결국 한국식 일식이 더 입에 잘 맞는 것이다.
아직까진 한식은 유럽에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다 보니
유럽 음식에 질렸을 때 중식, 일식만 먹어도
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가장 속이 편한 건 베트남 쌀국수가 최고다.
밑반찬 중에 미역줄기가 있어
당연히 우리가 늘 먹는
미역줄기무침인 줄 알고 크게 한 입 먹었는데
시큼한 식초 맛이 강한 무침이었다.
우리 집은 나물에 다 참기름만 넣어서
익숙한 맛이 아니라 별로였다...
패키지여행은 항상 주는 대로 먹어야 하지만
이 음료 선택만큼은 자유이기에
호기롭게 이탈리아의 음료를 먹어보겠다며
레몬(이탈리아어로 limone)맛 탄산음료를 시켜봤다.
그랬더니 향부터 불길한 화장품 냄새가 났다.
냄새 맡자마자 이건 ㅈ됐음을 감지했으나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 모금 마셨는데
예상대로 화장품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맛도 향도 화장품이었다.
레몬만 들어간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지 않는 홍차였다.
아무리 마셔도 적응 안 되는 게 이 홍차 같다.
근데 또 실론티는 좋아하고 잘 마시는데...
참 알 수 없는 맛이다.
메인 요리인 초밥이 나왔다.
얼만지도 모르고 그냥 주는 대로 먹는 거다.
완전한 사육이라 볼 수 있다.
초밥의 퀄리티는 웃기지도 않는다.
흑미로 초밥을 만드는 것도 처음 봤고
마트 초밥이 그리울 만큼 맛이 없었다.
회라도 많이 주든가 게맛살만 엄청 많이 들었다.
초밥을 먹고 있는데 볶음밥이 나왔다.
밥 다음 밥이라니 탄수화물 코스요리인가.
칵테일 새우와 게맛살을 넣은 해물볶음밥...
이거 근데 중식 아닌가?
여기 정체성이 완전 짬뽕이다.
중식일식이 다 합쳐져 있고
그걸 먹는 한국인은 그저 웃길 뿐이다.
패키지여행이라 많이 걸어서 배가 고팠다.
한참 볶음밥을 입에 꾸역꾸역 넣고 있는데
접시에 던진 것 같은 교자가 나왔다.
군만두를 먹으니 이제야 좀 맛이 느껴진다.
그전까지는 뭐가 맛있는 지도 모르고 배만 채우기 바빴다.
이탈리안이 보면 연속으로 맘마미아를 외칠 것 같은
케첩 베이스의 탕수육도 먹어 줄만 했다.
일단 베이스가 고기이기 때문에
탄수화물에 지친 입에 아주 잘 들어갔다.
아니 근데 초밥 이후로 다 중식인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어쩌면 나도 한국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탈리아 피렌체 한복판에서
중국인들이 만들어주는 일식을 먹다 보니
내 정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마지막 피날레는 역시나 중식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중식당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여러모로 음식의 재료나 맛이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단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큰 규모의 식당이 이래도 되나 걱정도 된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이 건물 전체가 식당인 것을 깨닫고
내가 감히 건물 주님을 의심했구나, 하는 마음에
불경했던 마음을 반성하며 식당을 나섰다.
비록 나는 별로였으나
멋모르는 서양인들이 많이 와서 사 먹겠지...
서양인들아 여기에서는 감히 오이시라 하지 말고
하오츠라 하거라.
자신 없으면 부오노나 날려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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